1950.6.25 일요일 새벽4시 북한의 기습 남침
1950.6.26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북한 침략자 규정. 미국주도의 통합군사령부 설치(맥아더 사령관으로 유엔군 파견),북한의 의정부 점령
1950.6.27 남한 정부 대전으로 이동,북한군 서울 도심 진입
1950.6.28 북한군 서울 점령
1950.7.14 남한 정부 유엔군에 한국군 작전권 이양
1950.8월 인민군 낙동강 진격
1950.9.15 맥아더 인천상륙작전 성공
1950.10.1 유엔군 38도선 회복
1950.10.2. 이에 긴장한 주은래(중국)는 미군이 38도선 넘으면 중공군을 출동시킬 것을 경고
1950.10.7 유엔군 38도선 돌파함(but, 유엔에서는 처음에 38도선 지역까지만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맥아더가 이를 무시하고 북으로 넘어감- 그리고 이후에 유엔에 사후 승인을 받음: 유엔의 이런 이유는 당시 국제적인 관계, 특히 중국에 대한 의식도 있었음. 그 우려는 다시 중공군 투입으로 사실로 드러남)
1950.10.10 원산, 17일 함흥, 흥남, 19일 평양 점령
1950.10월 하순 청천강 점령
1950.10.26 압록강변 초산 도달 → 이에 긴장한 중국은 항미원조 30만 군대 파병, 11월에는 소련의 미그기도 등장
1950.11.28 유엔군 전면 후퇴 결정
1950.12.3 맥아더 원자폭탄 사용 건의(이로 인해 맥아더 해임, 리지웨이 장군 임명)

1951.1.4 유엔군 후퇴, 평양, 흥남 철수
1951.6월 정전회담(유엔군, 북한군, 중공군 참석: 남한은 작전권이 없어 참석 못함): 이때 군사분계선 중립국감시기구 구성, 포로교환, 외국군 철수 등의 내용으로 회담을 여러차례 하지만 잘 되지 않음.. 1953년까지 정전협정이 계속되다가 1953년 휴전 상태가 됨

등명낙가사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사찰이라고 합니다. 등명낙가사는 강원도 강릉시 강동명 정동진리 괘방산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시대 7세기(선덕여왕시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625로 인하여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이 지역의 대표적 사찰로 통한다고 합니다.

등명낙가사를 자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등명낙가사 오백나한전 밑에 등병감로약수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곳 약수 물은 모든 병을 고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만병통치약인가봅니다.

맛은 약간 찝찔합니다.
물어보니 철분성분이 들어 있어서 그런 거라는데, 몸에 좋다고 합니다.

많은 신도들은 등병감로약수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이에 따라 절을 올리고 시주를 합니다. 이는 매우 신성한 것으로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등명낙가사를 찾았던 시간이 오후 4시 쯤이었습니다. 그러나 등명낙가사의 진정한 묘미는 동해의 일출과 월출을 맛보는 것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늦은 시간 또는 아침 일찍 이곳에 방문하여 일출 또는 월출을 맛보고 싶군요.

주변에 경포대해수욕장, 정동진을 찾으면서 이곳을 찾는 것도 한 묘미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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